황금가지에서 나온 『셜록 홈즈 전집』은 이미 옛적에 다 독파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나마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이 기억에 있을 뿐. 그래서 2권인 「네 사람의 서명」은 빌려올 때 무슨 내용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이번 사건의 의뢰인인 여성에게 왓슨이 반하여 청혼하고 막판에 결혼하는 내용이었어요. 아무래도 저자인 아서 코난 도일은 남녀의 애정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수사나 그 기나긴 과정에 대해 쓰는 것에 흥미가 없거나 못쓰거나 둘 중 하나일 거 같던 것이 왓슨의 사랑은 홈즈가 의뢰를 받고 사건을 해결하는 며칠 새에 다 이루어지거든요. 아마도 왓슨의 사랑 이야기는 일종의 흔들 다리 효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건의 주축이었던 왓슨의 부인은 이번 내용을 이후로 등장치 않다가 나중에 그 죽음이 간단한 대사 처리로만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왓슨 부인의 이른 죽음도 아서 코난 도일의 삶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싶더라지요.
이번 「네 사람의 서명」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의 보물찾기와 추리를 섞은 듯한 내용이었는데, 이국적인 배경을 무대로 한 거부가 숨겨놓은 보물을 둘러싼 인간들의 음모와 살인사건이었어요. 그리고 홈즈는 앉아서 추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를 이용해 사건의 흔적을 좇고, 평범한 사람처럼 접근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얻고, 선박을 이용해 범인을 추적하는 등 아주 다양한 수사방법이 등장하는데 뭔가 홈즈 하면 낡은 의자나 소파에 앉아 말로 추리를 하는 모습이 더 남기 때문에 이런 홈즈의 활약은 제 기억에서 묻혔었나 봅니다. 보면서 놀란 게 홈즈는 굳이 탐정이 아니라도 먹고살만한 재주가 많았는데 지나가듯 등장한 권투 동호회의 경기에서 이겼다는 걸로 보아 운동신경도 월등하고, 다른 신분의 사람들로 깜쪽같이 변장하는 것도 여러 번 등장한 게 이때마다 배우를 했어도 되었을 거라고들 하고, 평범한 여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접근해 수다를 떠는 것처럼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는 걸로 보아 기자를 해도 충분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네 사람의 서명」 편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영국의 시대 상황이었는데 홈즈가 생존한 당시 영국은 19세기 이미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는 세포이 항쟁이나 인도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며 제목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그 세포이 항쟁이 일어난 인도에서 값나가는 보물을 발견한 이들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이 빼앗긴 보물에 대한 원한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고요. 상당히 제국주의적 시대의 모습이 소설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지만 역시 시대가 시대라서 그런 건지 홈즈 소설에선 사건의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고 역시 인도인이나 다른 지역 원주민에 대해 냉정한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살인사건의 범인 중 한사람이었던 원주민 '통가'의 묘사만 봐도 그렇고요. 거기다 통가는 제목의 네 사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수하로써 등장합니다.
제 왜곡된 기억은 이 사건을 통해 왓슨이 돈많은 부인을 얻나 싶었는데 결과는 또 그게 아니라서 놀라기도 했고요. 보물은 결국 범인의 농간으로 아무도 얻지 못하게 되지요. 하지만 왓슨이나 왓슨의 부인이나 형편이 비슷비슷하게 가난한 처지라 오히려 그런 행운이 악조건이 될 법도 해서 왓슨에 한해서는 행복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문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홈즈와 왓슨의 대화체가 1권과는 달라지는데 처음 만났을 시절의 존칭은 사라지고 이제는 말을 놓더군요. 아마 소설을 읽다 보면 1권의 사건과 2권의 사건 사이에 많은 잡다한 사건이 있었다는 게 추측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소설에서 초반에 등장한 왓슨과 홈즈의 대화가 압권이었는데요. 홈즈가 말하길 "내게 가장 매력 있는 인간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이 셋을 죽여서 교수형 당한 여자이며 가장 혐오스러운 인간은 런던 빈민을 위해 자선활동한 남자"라는 말을 하자, 이 말을 들은 왓슨의 표정이 내 표정일 거라고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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