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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리뷰

by 0I사금 202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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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할 책은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본 이후 동물 관련 자료집들을 일부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 빌려온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야생에 관련된 정보전달을 위한 서적보다는 기행문-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세렝게티'란 말은 마사이족 언어로 '끝없는 초원'을 뜻한다고 합니다. 탄자니아에 속한 이 초원은 본디 마사이족의 땅이지만 탄자니아 정부가 1951년부터 99년간 빌리기로 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고요.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MBC 방송국의 자체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내용들이 엮여 있는데, 책 머리말에 의하면, 외국의 자연 다큐멘터리가 많이 수입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방송국에서 다큐를 제작하기로 한 이유는 우리 시각으로 만든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고행의 결과물은 매우 훌륭할 듯싶습니다. 이 책에는 제작진들이 겪은 각종 곤란과 힘듦이 기록되어 있고, 또 그만한 노력 끝에 완성된 영상물 또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나오니까요.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동물들의 사진이나 생태는 물론이거니와 다큐멘터리로 하나의 영상물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고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처음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절차와 준비의 복잡함이라던가 위협스런 야생동물의 돌발행동 코뿔소 한 마리가 차를 들이받으려 한 일이나 임신한 치타가 촬영차 위로 뛰어올라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도 있고 제작진들이 풍토병이나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일도 있거니와 원하는 장면을 찾을 때까지 끝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재미난 점은 이 세렝게티 국립공원 내의 관광객들이 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과 사냥으로 먹고사는 동물들에게 참으로 민폐라는 건데 관광객 차량이 다큐멘터리 제작진 차량을 쫓아와 동물들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더군요. 거기다 관광객들은 다큐멘터리 제작진들과 함께 있으면 동물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큐 제작진으로선 원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물론 그런 관광객들이 있어 그 지역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이겠지만 읽다 보면 약간 짜증이 나더라고요.


책에 언급된 많은 동물들 중에서 인상 깊은 녀석들이 있는데 긴꼬리과부새라는 녀석은 행동이 특이해서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긴꼬리과부새는 번식기에 수컷이 집을 만들어 암컷에게 구애하는데, 암컷은 가장 맘에 드는 집을 선택하여 수컷과 짝짓기 하고 알만 낳고 가버린다고 합니다. 알을 온전히 품고 지켜내는 것은 수컷이 하는 일이라는데 아무래도 이 새의 이름은 긴꼬리과부새가 아니라 긴꼬리홀아비새가 돼야 맞는 게 아닐는지? 긴꼬리과부새말고도 수컷이 새끼를 지키는 일을 맡는 동물은 하이에나가 있는데 하이에나도 사자처럼 모계사회라 사냥을 전부 암컷이 도맡는다고 합니다. 사자들의 무리는 수컷하렘이 아니라 무리의 대다수가 암컷인 모계사회. 다른 수사자로부터 무리를 지킬 소수의 수컷만을 남기고 나머지 수컷들은 다 쫓아낸다고 하는군요. 하이에나는 특이하게도 수컷의 지위가 암컷의 지위에 의해 결정이 된다고 하는군요. 인간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규율과 법칙들이 야생에는 존재하고 있다고요.


역시 눈에 띄는 동물들은 세렝게티의 맹수들인데 특히 사자들이 멋진 사진이 많더군요. 근데 사자의 교미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뿜은 게 사자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3000번의 짝짓기를 하고 특히 무리의 얼마 안 되는 수컷이 애를 많이 써줘야 하는데 짝짓기를 하고 지친 수컷에게 암컷들이 짝짓기를 보채는 경우가 있어 수컷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사자의 무리는 프라이드라고 칭하는데, 대개 적은 수의 수컷과 다수의 암컷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책에서는 암컷들로만 이루어진 나망가프라이드라는 독특한 프라이드도 등장합니다. 사자 부분을 읽다 보면 제가 예전에 본 다큐 '라이온 퀸'이 떠오르더군요. 멋있기로는 사자가 특히 멋있지만 제작진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많이 촬영한 것은 치타였는데 치타는 세렝게티 초원의 맹수들 중 가장 취약한 종족이라고 합니다. 사자나 하이에나에 의해 죽는 새끼들이 많아 그 개체수가 줄어드는데 한몫한다고요. 하여튼 그 치타의 그 연약함이 제작진의 마음을 흔들었던 건지 치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근데 평소에 전 표범과 치타를 잘 구분 못했는데 이 책을 보니 좀 분간할 수 있겠더군요. 표범은 치타보다 육중하고 날카롭게 생긴 반면 치타는 마르고 뭔가 예쁜 분위기? 그리고 눈물선이 또렷하고 새끼 때 특히 사랑스럽더군요.


읽으면서 제작진들의 치타에 대한 애정이 전해진 건지 왠지 좋아하는 맹수에 치타도 넣게 될 느낌입니다. 약해서 동정적인 마음만이 아니라 맹수들 중에서도 정말 예쁘게 생긴 게 외모지상주의 같으려나요... 치타는 빠른 속도를 지닌 대신 사자만 한 힘도, 표범의 잘 발달한 근육도, 하이에나의 강한 턱도 없지만 그래도 자기가 사냥한 것 외에는 남의 것을 뺏지 않고 썩은 고기도 입도 대지 않는 진정한 '초원의 승부사'라고도 하니까요. 책에서는 세렝게티를 야생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장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전 '약육강식'보다는 '균형'의 초원이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식동물들은 항상 육식동물의 공격을 받지만 그것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버팔로나 코뿔소, 코끼리와 같은 동물들은 사자급의 맹수도 함부로 덤비지 못합니다. 하지만 초식동물들이 잡아먹히면서 개체수가 조정되면 그만큼 많은 식물들이 안정적으로 자라고 이것은 다시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유지시키지요. 그리고 맹수의 새끼들도 다른 맹수의 먹이가 되면서 맹수들의 개체수도 조정됩니다. 약하고 강한 것보다는 종족 나름의 장단점이 있으며 이것이 결국 균형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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